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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몰랐어요. 아는 체를 하시길래 물었더니 '내가 그 학동 참사 아빠 된다'…

민경환
2022.03.14 09:03 17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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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막에서 겨울을 보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안 모 씨는 광주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매형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스팔트 길바닥 위 임시 천막에서 겨울을 보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체육관 시설물을 납품하던 생업도 모두 제쳐뒀습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피해자 가족 대표를 맡게 됐습니다. 그런 안 씨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밤이 되면 천막 주변을 한참 서성인 한 중년 남성이 있더랍니다. 으레 이곳 주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기엔 사고 직후부터 자주 찾아와, 오래 머물렀습니다.
 
"누군지 몰랐어요. 아는 체를 하시길래 물었더니 '내가 그 학동 참사 아빠 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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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 참사 아빠.' 1년도 채 안된 일입니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3분. 광주 학동에서 재개발을 위해 철거하던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붕괴 조짐을 느낀 작업자들은 미리 대피했지만, 건물은 도로를 덮쳤습니다.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였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17살 고등학생도 희생됐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밤 11시가 돼도 잠이 안 와 나와보신 대요. 그런데 가까이 오지는 못하세요. 그때 사고도 그분들한테 정말 날벼락이었잖아요. 이번 일로 그 기억이 되살아난 건데, 또 다른 아픔인 거예요."
 
안 씨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며칠 후, 현장에서 '학동 참사 아빠'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들은 대로 아버지는 사고 현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처음 이곳을 찾은 건, 사고 당일 밤 11시였습니다. 믿기 힘든 광경을 멍하니 보다 한 분이라도 살아서 구조될까 싶어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틀에 한 번 꼴로 현장을 찾습니다. 한밤 중 집에 있으면 가슴이 막혀서 못 버티고 뛰쳐나오는 겁니다. 악을 쓰며 울고, 걷고 또 걷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 천막 안에는 못 들어가겠어요. 내가 울면 같이 울까 봐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지만 천막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학동 참사 아빠'는 안 씨와 자주 통화하며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지만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조언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 또 다른 붕괴 사고로 되짚게 된 지난 7개월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시간이 갈수록 몸과 마음에 고통이 쌓여요. 참사 당하고, 그다음엔 '갑질' 당하고"
 
학동 참사의 책임을 규명하는 수사는 지금도 한창입니다. 경찰은 최근까지도 현대산업개발 임원을 불러 조사했습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수사와 피해 보상 등을 대응하고 있습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로 피해 가족들만 모아도 수 십 명입니다. 아버지는 대형 건설사들의 작전을 '시간 끌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은 산업재해를 전담하는 부서도 있고, 쉽게 말해 '노하우가' 있다. 시간을 끌며 어르고 달래고 재촉하는 동안 유족들은 점점 지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린 다 처음 겪는 일인데, 아니 애당초 겪어선 안될 일인데"
 
학동 참사 피해자 측 변호인은 피해 가족들이 지금은 울어도 합의를 논하게 될 땐 피눈물을 흘린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고 나서 다른 나라 법과 판례까지 공부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건설사의 경우 1억 남짓 위로금으로 합의를 유도하는데, 미국의 경우 100억 가까이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벌금은 수천 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감히 부실하게 공사할 엄두도 못 낸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재판장에 가면 많아야 1, 2억이니 그것보다 더 많이 줄게' 식으로 합의를 시도하니 아주 돌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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