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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하청노동자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민경환
2022.11.01 17:56 6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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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도 보고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 김 씨의 죽음

9월 21일, 제보 한 건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8월 6일, 경기 고양시에서 일용직 근로자 52세 김모 씨가 전기작업 중 감전사고를 당했고 45일간의 치료 끝에 결국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지자체의 관할 부서에 전화해봤지만 어느 곳도 이 사고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제보자도 사망하신 분과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어 더 아는 바가 없다 했습니다.

유족을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돌아 본 대형병원 장례식장에서도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된 건 아닐까, 서른여덟 살의 나이에 전신주 위에서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한 故 김다운 씨가 떠올라 답답했지만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제발 진실을 밝혀주세요"..큰 딸의 제보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9월 27일, 한전 하청노동자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숨진 분의 이름은 김효용 씨였습니다. 그분의 큰 딸이 제보를 해왔습니다.

김효용 씨 큰딸 제보 中

"작년 11월에도 한전 하청 노동자의 감전 사망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외주화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건의 은폐와 조작 역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장이 너무도 아려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마음에 제보합니다.

제발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그 다음 날, 김효용 씨의 아내와 큰 딸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휴대전화에 남은 수십 개의 통화 녹취

김효용 씨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휴대전화를 샅샅이 뒤져 본 유족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효용 씨 생전 통화 녹취 中

"회사도 좀 살기 위해서..우리가 이제 점검, 그날 뭐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얘기해 줘"
"모르는 전화는 받지 마.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전화할 거야. 그런데 받지 마."
"혹시 물어보면 하청 아니고 일용직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야기만 해."
"미안하다. 이런 부탁도 해서.."

병상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에게, 현장 관계자들은 집요하게 조작과 은폐를 지시했습니다. 김효용 씨는 화는 커녕 볼멘소리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친한 동료에게 "다 나아서 또 일 하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고 털어놓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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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날 '점검'한 걸로 해"

이 같은 은폐 시도 배경은 뭐였을까요.

지난 1월 보도된 故 김다운 씨 사망사고 이후 한국전력은 주요 재해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감전사고를 막겠다며 '정전 후 작업'을 확대하고 모든 공사 현장에 안전담당자를 배치하겠다고 밝혔고, 모든 작업에 대해 전날 오후 4시까지 작업계획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김효용 씨가 사고를 당한 그날 작업은 한전에 보고되지 않은 '무단 작업'이었습니다. 8월 6일 당일은 '토요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김효용 씨에게 현장 관계자들은 그날의 작업을 '점검'이라고 말하라고 했던 겁니다.

김효용 씨-업체 관계자 생전 통화 녹취 中

"토요일(작업)이 무단이야 원래..회사도 좀 살기 위해서..우리가 이제 점검, 전날 작업해 놓고 확인 차원에서 (한 걸로)"

그래서일까. 그 날 현장에는 김효용 씨를 비롯한 작업자들의 '안전'을 책임질 담당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공사 전반을 관리해야 하는 감리원은 물론, 현장안전관리책임자 역할을 하는 현장대리인도 없었습니다. 위험성을 점검하는 한전의 실시간 모니터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효용-현장 동료 생전 통화 녹취 中

"맨홀에 들어가 있었는데, 막 큰소리 나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아가지고 뭔일인가 하고 올라왔어. 올라와서 딱 보니까 아무도 안 달라붙어 있잖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작업하던 김효용 씨는 결국 380V 전압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미승인 무단작업을 필수 금지행위로 제정하고 집중 관리하겠다던 한전의 선언은 유명무실했던 겁니다.

시공업체는 00전기, 현장에 있던 건 △△전기?

김효용 씨와 김효용 씨의 가족들과 가장 많이 통화한 건 △△전기 소속의 A소장이었습니다.

취재진도 처음 이 사건을 마주했을 때는 당연히 △△전기가 이 공사의 시공업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한전의 발주를 따낸 시공업체는 00전기였습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김효용 씨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모든 동료들은 00전기가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김효용 씨를 비롯한 현장 노동자들을 관리한 건 △△전기였습니다. 노동자들의 현장 투입부터 임금을 관리하고 심지어 '현장소장'이라는 직책을 두며 작업 전반의 실질적인 책임자 역할까지 했습니다.

시공업체인 00전기가, 법으로 금지된 하청을 △△전기에게 주고, 그 사실을 가리려고 △△전기 소속 작업자들을 자신들이 직접 일용직으로 고용한 것처럼 의심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불법 하도급을 한 것으로 보였다는 뜻입니다.

....


사고 발생 한달 반 만인 9월 21일에도 산업재해를 관리하는 지자체와 고용노동부 부처 직원들은 이 사고에 대해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초기 수사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김효용 씨와의 첫 통화에서부터 "종결해도 되냐"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곧 '불입건 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이후 김 씨가 숨진 뒤에야 부랴부랴 재수사에 착수해 협력업체 관계자 3명을 입건했습니다.

故 김다운 씨 사건 이후 한전이 내세운 주요 대책들은 이번 현장에서 대부분 지켜지지 못했고, 결국 또 다른 전기노동자가 감전 사고를 당했습니다.

무단 작업도, 불법 하도급 정황도 "몰랐다"고만 하고 있는 한전이 정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협력업체들은 언제든 사업상의 이유로 '무단 작업'이나 '불법 하도급'의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희생이 반복될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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