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보다 더 미친 중국 고대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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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거병 (BC 140~ BC 117)
중국 전한시대의 장군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존재
그러나 23살의 나이에 사망한 비운의 명장
곽거병 이전 한나라
- 항우를 정복하며 통일 왕국을 세운 전한고제 유방은 흉노의 묵돌 선우(군주라는 뜻)에게 개털리고 군신 관계를 맺었다
(당연이 흉노가 형, 한나라가 아우)
- 이후 흉노는 항상 한나라를 괴롭혔고, 곽거병이 나타나기 직전까지도 지속적으로 한나라를 괴롭혔다.
- 이 때 곽거병이 등장했고, 당시 나이는 18세였다.
곽거병 등장 이후 한나라
- 기원전 123년 한무제가 곽거병을 표요교위로 삼고 흉노 공격에 동행시켰다.
- 이 때 전투에서 곽거병은 기병 8백기로 수백리를 진격하며 흉노를 2천명 이상 죽였다. (18세)
- 21살 때 표기 장군이 되었다. (표기장군은 대장군 바로 다음 직위)
- 병력 1만을 이끌고 1천리를 나가 흉노와 싸워 흉노의 장수들을 참수했으며 5천 이상의 흉노를 죽였다.
- 한나라가 대대적으로 군을 편성해 흉노 정벌에 나갔는데, 선봉대 곽거병의 후방 부대가 흉노에 의해 끊어지게 됐다.
이 때 곽거병은 후퇴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상태로 흉노군의 주요 진영인 기련산으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 기련산 전투에서 1만 이상의 흉노를 죽였다.
- 기련산 전투에서 흉노의 왕자, 공주, 장군 등 수백여명을 사로잡았다.
- 이후 흉노의 한 장군 부대와 싸워 3천 이상의 흉노를 죽였다.
- 1년 뒤 한무제는 다시 한 번 대대적으로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곽거병에서 병력을 주었다.
- 이후 곽거병은 군대를 이끌고 1천여 리를 행군하며 고비 사막을 넘고 흉노의 심장부인 바이칼호까지 쳐들어갔다.
- 곽거병은 바이칼호까지 쳐들어 가면서 흉노 선우의 주요 장수들은 물론 상국, 당호, 도위 등 70명 이상 죽였다.
곽거병의 바이칼호까지 진격 루트
곽거병이 병력을 이끌고 넘었던 고비사막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곽거병이 사막이라는 점 때문에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보급없이 흉노의 심장부까지 1천여 리를 진격했다. 심지어 고비 사막도 뚫었다.
그렇다면 곽거병은 보급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1. 흉노군을 박살낸다
2. 거기서 나오는 것으로 보급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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